오픈소스 단체들
1.1ASF(Apache Sfotware Foundation, ASF) 출현.
아파치 소프트웨어 재단(Apache Software Foundation, ASF)은 다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비영리재단이다. 자유소프트웨어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 FSF)과 함께 오픈소스 문화를 꽃피운 대표 단체로 꼽힌다. ASF에서 관리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시에 ‘아파치 방식(Apache Way)’이라는 독특한 문화 아래에서 관리된다.
ASF는 1999년 설립된 미국의 공식 비영리단체다. ASF 설립에 참여한 이들은 이미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아파치그룹’이란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당시 ‘아파치 HTTPD 웹서버’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아파치 웹서버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소스코드를 수정하고 재배포할 수 있는 서버였다. 동시에 지속적인 유지보수도 필요했다. 당시 브라이언 벨렌도프(Brian Behlendorf)라는 개발자는 보다 체계적으로 아파치 웹서버 기술을 개선하고자 메일링 리스트를 만들었고, 이후 많은 기여자가 협업하면서 아파치 웹서버 기술을 발전시켰다.
ASF는 왜 하필 ‘아파치’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아파치는 미국의 인디언 부족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파치 부족은 용맹한 전사를 거느리고 다양한 전략을 구상하는 종족으로 유명했으며, 19세기 미국 군대와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패치 웹서버(patchy web server)’라는 발음과 비슷한 점도 아파치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패치는 어떤 프로그램을 일부 수정하는 작업을 뜻한다.
아파치 서버는 향후 전 세계 웹사이트 중 65%가 사용할 만큼 인기 있는 기술이 됐다. 아파치그룹은 이외에도 자바, 펄, PHP와 관련된 다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기술을 만들었던 개발자들은 법률적인 조언이나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체계적인 단체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에 따라 ASF가 설립됐다.
ASF는 오픈소스 기여자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예를 들어 ASF는 오픈소스 개발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제공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지원한다. 개인들이 지적재산권 분쟁 같은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적인 보호막도 제공한다. 다른 단체에서 ‘아파치’라는 브랜드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도 맡고 있다.
1.2 Apache License History
아파치 재단이나 재단의 프로젝트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소프트웨어는 현재 아파치 라이선스 버전 2.0에 의해 배포되고 있다. 아파치 라이선스 버전 2.0은 2004년 아파치 재단에 의해 승인되었다. 버전 2.0으로 개정한 이유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라이선스를 수정할 필요 없이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여코드(Contribution)의 제출에 대한 라이선스를 명확히 하며, 기여자들의 특허에 대한 특허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등의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라이선스 개정에 따라, 아파치 그룹의 원래 목표에 충실 하면서도 다른 오픈소스 라이선스들과의 상호운용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아파치 재단에서 만들어진 모든 패키지들은 특별한 언급이 없어도 아파치 라이선스 버전 2.0에 의해 배포된다.
아파치 라이선스의 가장 큰 프로젝트는 안드로이드 플랫폼이다. 커널과 애플리케이션을 제외한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많은 부분은 아파치 라이선스로 배포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요소들은 CPL, EPL, GPL, LGPL 등으로 배포되고 있으며, 이들은 아파치 라이선스가 아닌 각각의 라이선스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2.1 Mozilla Foundation 출현.
모질라 프로젝트는 1998년 네비게이터와 익스플로러와의 브라우저 전쟁에서 불리함을 느낀 넷스케이프에가 브라우저 스위트의 소스 코드를 공개하여 수천 명에 이르는 프로그래머들이 일으키는 혁신의 힘으로 브라우저 시장을 다시 한번 리드해 나가고자 하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한 해가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커뮤니티 멤버들은 실제로 새로운 기능과 기존 기능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프로젝트 자체의 기획과 관리에도 깊숙하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비록 특정 기업에서 주관하였지만, 오픈 커뮤니티로서 모질라 프로젝트는 이미 기업의 조직범위를 넘어서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커뮤니티 멤버들은 프로젝트가 원래 지향했던 미션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다른 브라우저나 개발 도구의 개발 등과 같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였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모질라 프로젝트에 공헌했는데, 이들의 노력은 2002년 모질라 1.0 버전이 출시되면서 그 빛을 보게 된다. 이 버전은 기존의 네비게이터 브라우저의 기능을 크게 업그레이드했을 뿐만 아니라,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도 포함된 스위트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이미 브라우저 시장의 판도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넘어간 상태였다. 2002년 90%가 넘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사용자들이었고, 모질라의 발표가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그 힘이 너무 미약하였다. 모질라에서의 새로운 브라우저인 피닉스(Phoenix)도 2002년에 발표되었는데, 이 브라우저가 이후 파이어폭스(FIrefox)가 되면서 구글의 크롬이 나오기 전까지 입지를 조금씩 넓히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는 브라우저로서 분전하였다.
2003년 모질라 프로젝트는 AOL의 손을 떠나 독립적인 비영리 재단인 모질라 재단으로 이관된다. 새로운 모질라 재단은 개방성을 유지하면서, 혁신과 인터넷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파이어폭스와 썬더버드(Thunderbird) 등이 발표될 수 있도록 하였고, 웹의 접근성 확대와 같은 공익적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기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2004년 발표된 파이어폭스 1.0은 큰 성공을 거두면서, 1억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였고, 그 이후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면서 2008년에는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의 20%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질라 프로젝트와 모질라 재단의 이런 성공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그냥 놔둔다고 알아서 굴러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넷스케이프는 모질라 프로젝트를 위해 운영진으로 6~8명의 인력을 투입했고, 100~150명 정도의 넷스케이프 제품 엔지니어들이 만든 코드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모질라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넷스케이프를 사들인 AOL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AOL은 넷스케이프 클라이언트를 통해서 AOL 웹사이트로 들어오는 트래픽이 늘기를 바랬지만, 모질라 프로젝트 팀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운영원칙에 따라서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했기 때문에 AOL의 다양한 압력에 저항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모질라의 운영진들은 모질라 프로젝트가 AOL에 소속된 넷스케이프 엔지니어들이 주도하게 되기 보다는 외부의 순수한 개발자들에 의해 주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가능한 핵심 기술이 새로운 오픈소스 개발자들에게서 개발될 수 있도록 꾸준히 유도하였다. 이런 와중에 넷스케이프 제품군의 시장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한다.
급기야 AOL 내부에서 2가지 대립되는 시각이 등장하였다. 하나는 오프소스가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커다란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로 경영진에서 가진 시각으로 모든 결정은 이익에 기반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질라 운영진들은 AOL의 경영진들과 의견이 매우 달랐다. AOL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방향으로 운영을 해서는 자발적인 자원봉사자들과 다른 상업적 파트너들의 열성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없고, 그로 인해 프로젝트의 질이 떨어진다면 결국 모질라 프로젝트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갈등의 와중에 발표된 넷스케이프 6기 시장에서 처절한 실패를 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UI 요소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특정 버튼을 통해 AOL 사이트로 유입하게 한다거나, 광고와 관련한 요소를 집어넣고, 돈을 지불한 파트너들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넣는다는 것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런 갈등이 지속되면서 모질라 프로젝트의 운영진들은 AOL의 직원으로서의 지위와의 상충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프로젝트의 본질을 훼손할 수 없었기에 사사건건 경영진들과 충돌하는 양상이 계속되었다. 넷스케이프 6의 발표 이후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이용한 매출이 계속 감소하자 결국 AOL은 칼을 빼들었다. 그들은 2001년 모질라 프로젝트를 이끌던 미첼 베이커(Mitchell Baker)를 해고하고, 모질라 프로젝트를 직접 접수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모질라 프로젝트의 운영진들도 그렇게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 외부에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치는 다양한 사건이 모질라 프로젝트에 있었다. 특히 해고된 미첼 베이커는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로 직위를 바꾸고 계속 출근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지켰다. 2002년 마침내 이렇게 지켜낸 프로젝트의 산물이 모질라 1.0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프로젝트의 완성도에 놀라면서도 그다지 좋은 사용자 경험은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미첼 베이커는 모질라 프로젝트 이외에 로터스 1-2-3를 만들었던 미치 카포(Mitch Kapor)와 다른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었는데, 미치 카포는 미첼 베이커와 브렌단 아이크(Brendan Eich)에게 자신이 투자를 할테니 독립적인 모질라 재단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결국 2003년 AOL은 웹 브라우저 클라이언트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중단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미첼 베이커는 AOL에게 모질라에 최소한의 초기 자금을 준다면 이를 자신들이 운영하겠다고 설득을 해서 2백만 달러의 자금을 받아내고 AOL이 모질라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불확실한 오픈소스 재단의 일을 위해 브렌단 아이크와 브라이언 벨렌도르프(Brian Belendorff), 크리스 블리자드(Chris Blizzard)도 넷스케이프를 나와서 이사진에 합류를 하면서, 모질라 재단이 탄생하였다. 모질라가 독립할 경우 이들을 적극 지원할 생각이 있었던 미치 카포는 30만 달러를 출연하면서 모질라 재단의 초대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 와중에 모질라와 뜻을 같이 하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동참을 하면서 모질라 재단은 10명 정도의 소규모 인력으로 거대한 오픈소스 플랫폼을 운영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모질라 재단의 시작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운영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커다란 커뮤니티를 관리하면서 일을 진행시키기에 일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적었다. 특히 무엇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제품인 파이어폭스는 15개월 이후에 출시될 예정이었고, 최소한 이 때까지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자금부터가 당장 문제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모질라에 우호적인 파트너가 사무실을 임대하고, 적은 공간이지만 임대료 없이 공짜로 공간을 빌려주었다. 비록 작고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모질라 재단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희망과 행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비록 핵심연구자들의 수는 적었지만, 이들은 정말 열심히 모질라 프로젝트를 위해서 일을 하였고, 완전한 오픈소스 운영조직으로서 사람들이 정말 원할만한 소비자 제품으로서의 브라우저 제품군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힘을 모으자 그 성과는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비주얼 디자인 요소가 중요했는데, 캐나다의 센터 아일랜드(Center Island)에서 몇몇 비주얼 디자이너들이 멋진 로고와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신선한 비주얼 요소들을 만들어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검색이 문제였는데, 이 부분에는 구글과 야후! 등의 경쟁구도를 이용해서 검색박스를 이용한 모질라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면서 오늘날의 모질라 재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오픈소스 정신과 철학으로 거대 기업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이들의 적극적인 투쟁이 오늘날의 모질라를 있게 하였다.
2.2 MPL License History
모질라 프로젝트는 1998년 넷스케이프사가 자사의 웹브라우저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스코드를 오픈소스로 배포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즈음에 오픈소스 라이선스 들로는 BSD계열의 라이선스들과, GPL 및 LGPL 등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모질라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라이선스들이 모질라 프로젝트의 라이선스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MPL라는 별도의 라이선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MPL 라이선스는 GPL라이선스 등과 상호운용성(Compatibility)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모질라 재단은 프로젝트 코드를 "Mozilla tri-license", 즉 MPL/GPL/LGPL 라이선스에 따라서 배포하였다. 따라서 모질라 코드는 3개의 라이선스에 따라 사용할 수 있고, 이와 같이 3개의 다른 라이선스에 의해 배포하는 이유는 모질라 코드가 다른 오픈소스 라이선스들과 가능한 상호 운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질라 재단은 2004년 라이선스 정책을 바꾸기까지 2년동안 450명에 달하는 모든 기여자들로부터 라이선스 전환에 관한 동의를 받았다.
최근 개정된 MPL 2.0은 Creative Commons Zero, Other Public Domain Dedications, MIT, New BSD and Similar Permissive Licenses, Apache 2.0, GPL and MPL Dual License 와 상호 운용 가능하다. 그러나 CC-BY, CC-BY-*
, GPL은 그렇지 않다.
한편 모질라의 다양한 부분에서 새로운 코드베이스로 Non-MPL 라이선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MPL 모듈 팀에서는 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제안된 내용은 Non-MPL 라이선스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였고, 새로운 코드베이스에 대한 라이선스로 Apache 2.0을 선택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5. EPL(Eclipse Public License) 출현.
이클립스 프로젝트는 2001년 IBM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2004년 독립된 비영리조직인 이클립스 재단이 설립되어 이클립스 커뮤니티 Steward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이클립스 재단의 프로젝트는 178개에 달한다. CPL과 EPL은 IBM이 이클립스 등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든 라이선스이다. 현재 IBM은 EPL만 사용하고 있다